책소개
하르트만의 윤리학은 프란츠 브렌타노와 후설이 주창한 가치의 문제를 출발점으로 삼고, 셸러의 ‘가치윤리학’을 실질적으로 계승하고 있다. 그러나 하르트만은 가치를 경험하고 평가하는 의식적 삶에 초점을 맞추는 셸러의 가치감정의 윤리학에 머무르지 않고, 실재하는 본질로서 가치를 기술하는 ‘가치의 현상학’으로 관심을 돌렸다. 이러한 관심의 전환을 불러온 것은 그의 비판적 존재론이다. 하르트만의 존재론에 따르면 가치는 사물과의 실제적인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도, 주관에서 생겨나는 것도 아닌 ‘이념적 본질’이다. 이념적 본질로서 가치는 그 자체로 선천적, 절대적으로 존재한다.
가치 그 자체는 존재론에서 볼 때 이념적 존재다. 이러한 이념적 존재에는 가치 외에도 논리적 법칙, 수학적 공리 등이 속한다. 여기서 특징적인 것은 이념적 존재가 실제적인 모든 것들을 지배한다는 점이다. 즉, 이념적인 것은 실재 세계에 대해 ‘법칙’이 되고, 이로써 실제적인 것은 이념적인 것에 종속된다. 하지만 가치는 약간 다르다. 그 이유는 현실세계에서 우리가 가치에 따르기도 하고 따르지 않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제 사물이 가치 있거나 가치 없는 것으로 평가되지만, 가치 그 자체는 처음부터 인간의 평가와 무관하게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가치의 존재를 우리는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는가? 하르트만에 따르면 그것은 우리의 ‘내적 태도’에 의존한다. 내적 태도란 일종의 ‘자발적 감정’을 말한다. 이 자발적 감정에서 체험한 사실에 대한 가치반응이 나타난다. 여기서 가치직관도 가능해지는데, 가치반응과 결부된 직관에서 가치는 스스로 드러난다. 이렇게 가치가 스스로 드러나게 하는 내적 태도가 ‘현상학적 방법’이다. 오직 그것만이 가치의 객관성을 훼손하지 않고 가치 자체에 반응하고 응답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원서는 3부로 구성되어 있고 각 부에 부제가 붙어 있다. 1부 ‘윤리적 현상의 구조’에는 ‘도덕 현상학’, 2부 ‘윤리적 가치의 영역’에는 ‘도덕 가치론’, 3부 ‘의지 자유의 문제’에는 ‘도덕 형이상학’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 부제에서 보듯이 하르트만은 먼저 현상학적 방법에 입각해서 윤리적 현상을 파악했고, 다음으로 가치론에 근거해서 도덕을 정초했으며, 끝으로 의지 자유의 문제인 도덕 형이상학에서 윤리학을 완성하려고 했다.
이 책은 하르트만의 ≪Ethik≫ 4판(Berlin: Walter de Gruyter & Co., 1962)을 번역했다. 방대한 분량의 원서에서 5%의 핵심만 발췌해 간결하게 소개했다.
200자평
비판적 존재론 철학을 편 니콜라이 하르트만의 역작이다. 윤리의 문제를 현상학, 가치론, 도덕 형이상학의 관점에서 풀었다. 셸러의 가치윤리학과 칸트의 의무윤리학을 토대로 완성된 윤리학을 구성하려는 그의 시도를 핵심만 뽑아 확인할 수 있다.
지은이
니콜라이 하르트만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전반기에 걸친 격동기를 살았다. 15세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유학한 후, 매우 다채로운 학문적 편력을 겪는다. 처음에는 의학, 고전 문헌학 등을 공부했다. 하지만 1905년 러일전쟁으로 러시아 정국이 불안해져 대학이 폐쇄되자, 독일 마르부르크로 학적을 옮겨 당시 신칸트학파의 선봉이었던 헤르만 코헨, 파울 나토르프 등에게서 철학을 본격적으로 배웠다. 그리하여 1907년에 <플라톤의 존재 논리(Platos Logik des Seins)>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09년에는 <수학의 철학적 시원에 관해(Des Proklus Diadochus philosophische Anfangsgrande der Matemathik)>라는 교수 자격 논문을 제출했다. 그 후 1차 세계대전(1914∼1918)이 발발하자 정보장교로 참전했고, 1920년 마르부르크대학 원외교수가 된 뒤 1922년에는 그의 스승인 나토르프의 후임으로 정교수로 취임했다. 이후 1925년부터는 쾰른대학에서, 1931년부터는 베를린대학에서, 1945년부터는 괴팅겐대학에서 강의와 연구에 몰두했고, 마침내 1950년 괴팅겐에서 생을 마감했다.
옮긴이
이을상은 부산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아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정훈장교로 3년 근무했다(육군 중위 예편). 1993년 동아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동아대, 부경대, 동의대, 동서대, 부산대, 신라대 등에서 강의했고, 동아대학교 석당연구원 전임연구원, 동의대학교 인문대학 문화콘텐츠연구소 연구교수 등을 거쳐 현재는 영산대학교 교양교육원 전임연구원으로 있다. 관심 분야는 생명윤리학, 진화윤리학, 신경윤리학, 트랜스휴머니즘의 윤리 등이고, 한편으로 M. 셸러, A. 겔렌, N. 하르트만 등의 저서 번역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서론
제1부 윤리적 현상의 구조: 도덕 현상학
제1장 관조적 윤리학과 규범적 윤리학
제2장 도덕은 다수이고, 윤리학은 하나임
제3장 철학적 윤리학의 미로
제4장 칸트의 윤리학
제5장 윤리적 가치의 본질
제6장 당위의 본질
제7장 형이상학적 전망
제2부 윤리적 가치의 영역: 도덕 가치론
제1장 가치표에 대한 일반적 관점
제2장 가장 보편적인 가치대립
제3장 내용적으로 제약하는 근본 가치
제4장 도덕적 근본 가치
제5장 특수한 도덕적 가치: 제1군
제6장 특수한 도덕적 가치: 제2군
제7장 특수한 도덕적 가치: 제3군
제8장 가치표의 법칙성
제3부 의지 자유의 문제: 도덕 형이상학
제1장 비판적 예비 문제
제2장 인과와 자유의 이율배반
제3장 당위와 자유의 이율배반
제4장 윤리적 현상의 증명력
제5장 인격적 자유의 존재론적 가능성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고난도 가치다. 고난이 어째서 가치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실제로 불행을 견뎌 낼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고난은 반가치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견뎌 낼 만큼 충분히 강한 사람은 고난을 통해 스스로 강해진다. 이로써 그의 인간성과 덕성이 증대된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고난도 가치다.
-127쪽
사랑의 눈은 현실적인 인간의 배후에 있는 인간의 이념적 본질을 본다. 인격가치와의 관계에서 말한다면 오직 사랑하는 사람만이 이 참된 본래의 인간을 보지만,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보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인격성에 대해 맹목적이라는 말은 옳다. 오직 사랑하는 사람만이 인격가치를 인식한다.
-182~183쪽